
검은 종이라고 불리며 혐오 식품 취급을 받던 그 김이, 이제 전 세계 120여 개국으로 수출되며 10억 달러를 돌파하는 효자 품목이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밥에 싸 먹던 그 흔한 반찬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바삭하고 짭조름한 그 맛, 스낵화 전략이 세계를 바꿨다
저는 오래전부터 김을 좋아했지만, 처음에는 김이란 무조건 밥과 함께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마트에서 조미김 과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밑반찬이 간식으로 변신하다니 싶었는데, 사 먹어 보니 이게 또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조미김이란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맛소금 등을 더해 구워낸 한국 고유의 가공 김으로, 1986년 해표 김을 시작으로 동원 양반김이 알루미늄 파우치 포장 형태를 대중화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존 일본의 스시용 마른 김과는 달리 감칠맛과 바삭한 식감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밥 없이 단독으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는 점이 해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여기서 스낵화 전략이란 기존 반찬용 식품을 해외 소비자들이 과자처럼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들은 외국인들이 밥 없이 김을 집어 먹는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짠맛을 줄이면서 바삭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 찹쌀을 입혀 튀겨낸 김부각 스타일, 얇은 김 사이에 현미와 아몬드 등을 끼워 구운 샌드형, 와사비나 스리라차 시즈닝을 입힌 제품까지 그 종류가 정말 다양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먹던 그 김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현재 한국의 조미김은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같은 대형 유통망에서 시위드 스낵(Seaweed Snack)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 미국 시장에서만 2억 2천만 달러 어치가 팔렸다는 점이 이 전략의 성과를 잘 보여줍니다.
수출 10억 달러, 세계 시장 70%를 점유하게 된 이유
2010년 당시 김 수출액은 1억 1천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이 2025년에 10억 달러를 넘겼으니, 15년 사이에 거의 10배가 된 셈입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한류 붐 덕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알아보니 기술적인 차별성이 그 뒤에 단단히 받치고 있었습니다.
한국 김이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할 수 있는 핵심 이유는 두께 조절 기술에 있습니다. 여기서 두께 조절 기술이란 김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10g 단위로 두께를 미세하게 제어하는 가공 기술을 말합니다. 일본 김이 약 280g 내외의 두툼한 스시용에 특화된 것과 달리, 한국은 두꺼운 김부각용부터 냉동 김밥에 쓰이는 아주 얇은 것까지 폭넓게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활용 범위가 월등히 넓어진 것입니다.
품종의 다양성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한국은 방사무늬 김, 곱창 김(잇바디 돌김), 모무늬 돌김 세 가지 품종을 주력으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곱창 김이란 돌김의 별칭으로, 두께감과 씹히는 식감이 독특해 국내에서도 프리미엄 조미김 원재료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처럼 품종부터 가공 기술까지 다양성을 갖췄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차별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한류가 결정적인 불을 붙였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김밥 먹는 장면이 해외에서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실제 구매로 연결되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란 특정 검색어가 얼마나 많이 검색되는지를 시각화한 구글의 공개 데이터인데, 이 기간 동안 시위드 스낵 검색량이 급증한 것이 그 흐름을 뒷받침합니다.
한국 수산식품의 수출 현황을 살펴보면, 김이 단일 수산 가공 품목으로는 가장 높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해양수산부).
K-김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미김 특유의 감칠맛과 바삭한 식감이 해외 소비자 입맛에 맞아떨어진 것
- 와사비, 치즈, 소금식초 등 현지화된 시즈닝 개발로 취향의 폭을 넓힌 것
- 드라마와 예능을 통한 자연스러운 한류 연계 마케팅
- 10g 단위 두께 제어가 가능한 가공 기술로 제품 활용도를 높인 것
-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등 글로벌 유통망 입점으로 접근성을 확보한 것
기후 변화와 육상 재배, K-김의 다음 과제
밝은 수출 성적 뒤에는 사실 꽤 무거운 고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바닷물 온도가 계속 오르고 있고, 이 추세가 이어지면 2100년까지 국내 김 생산량이 최대 60% 이상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 양식은 수온이 22도 아래로 떨어지는 가을부터 봄 사이에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 해역의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속도로 1.44도 상승했고, 2023년에는 국내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연평균 해수면 온도를 기록했습니다(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제가 이 수치를 봤을 때 느낀 건, 지금 당장 수출이 잘 된다고 안심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출 물량이 늘어날수록 원재료 수급 문제는 더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스마트팜 기반 육상 양식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스마트팜이란 대형 수조에 바다 환경을 인공적으로 재현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 농업 방식으로, 김에 적용할 경우 수온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계절에 상관없이 1년 내내 생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CJ제일제당, 대상, 풀무원 등 대기업들이 이미 연구 개발에 나서고 있고, 정부 역시 35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기술 자체보다 상용화 비용이 관건입니다. 기술이 완성되더라도 대규모 생산 단계에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현재로서는 이 기술이 실제 양산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여전히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흐름은 국제 표준화 작업입니다. 시위드(seaweed)가 아닌 김(GIM)이라는 고유 이름으로 단독 표기하는 국제 규격화 작업이 현재 추진 중인데, 이것이 완성되면 지금껏 '바다 잡초'라는 이미지를 가졌던 이 식품이 드디어 제 이름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 하나가 바뀌는 것이지만, 마케팅에서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먹어온 김이 이런 여정을 겪어왔다는 걸 알고 나니, 지금 반찬으로 먹는 조미김 한 장도 왠지 다르게 보입니다. 앞으로 K-김이 육상 재배 기술과 국제 표준화를 발판 삼아 진짜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 더 깊이 뿌리내리길 기대합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직접 다양한 김 스낵 제품을 찾아 맛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