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용돈을 모아 초코파이 한 박스를 사서 층층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초를 꽂아 생일 케이크 대신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게 진심 어린 축하였습니다. 그 초코파이가 지금 전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되는 메가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더 뿌듯해졌습니다.
정(情)에서 시작된 국민 간식의 역사
초코파이는 1974년 당시 동양제과, 지금의 오리온에서 처음 출시되었습니다. 초코 코팅된 빵 사이에 마시멜로가 들어간 구조인데, 당시로서는 꽤 독특한 조합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우유 급식과 함께 하나씩 받아 먹던 그 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작은 포장지 하나인데 왜 그렇게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리온이 내세운 컨셉은 '정(情)'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이웃끼리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이것이 국민 감성을 정확히 건드렸습니다. 브랜드 포지셔닝(Brand Positioning)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교과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브랜드 포지셔닝이란 소비자의 머릿속에 특정 브랜드를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게 할지 결정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초코파이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감정을 파는 제품으로 포지셔닝에 성공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코파이'라는 이름 자체가 상표 등록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법원이 초코파이라는 이름은'초콜릿을 바른 파이'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 판단했기 때문에, 1979년 롯데를 비롯한 다른 제과업체들도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마트에서 여러 브랜드의 초코파이를 고를 때 은근히 맛 차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초코파이' 하면 오리온이 먼저 떠오르는 건,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쌓인 브랜드 자산(Brand Equity) 덕분일 것입니다. 브랜드 자산이란 특정 브랜드 이름이 소비자에게 주는 프리미엄 인식과 신뢰도를 의미합니다.
나라마다 다른 맛, 치밀한 현지화 전략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코파이를 해외에서 팔려면 그냥 똑같이 만들어서 수출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오리온이 선택한 방식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나라마다 입맛과 문화가 다르다는 걸 철저히 파고든 현지화(Localization) 전략이었습니다. 현지화란 제품의 맛, 디자인, 마케팅 방식 등을 해당 국가의 문화와 소비자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에서는 '정(情)' 대신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인(仁)'을 패키지에 새겼습니다. 색상도 중국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바꾸어 선물용 시장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초코파이 대신 오감자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것도 중국 전략의 핵심이었는데, 중국인들이 밀가루보다 감자를 선호한다는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현지 농가와 계약 재배를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감자는 중국에서 단일 상품으로 연간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그 나라의 차 문화가 공략 포인트였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텃밭에서 베리류를 직접 키워 잼을 만들어 먹는 식습관을 파악하고, 체리, 라즈베리 등 한국에는 없는 10여 종의 잼을 넣은 초코파이를 출시했습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과의 독점 공급 계약을 통해 유통망도 빠르게 확보했습니다. 1993년 러시아 진출 이후 매출 500억 원을 달성하기까지 23년이 걸렸지만, 이후 1,000억 원까지는 6년, 2,000억 원까지는 단 3년 만에 달성했습니다. 현지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인도 전략도 제가 직접 알아보면서 감탄했습니다. 힌두교와 이슬람 인구 비율이 높은 인도에서는 마시멜로의 핵심 원료인 젤라틴(Gelatin)을 전량 교체했습니다. 젤라틴이란 동물의 뼈나 껍데기에서 추출한 단백질 성분으로, 마시멜로의 쫄깃한 식감을 내는 데 쓰이는데, 일반적으로는 돼지 유래 성분을 씁니다. 오리온은 이를 소고기 유래 할랄(Halal) 인증 성분 또는 식물성 성분으로 완전히 대체하여 종교적 장벽을 넘었습니다. 할랄이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식품 또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덕분에 인도에서 채식 초코파이는 국민 간식 수준의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리온의 국가별 현지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 '인(仁)' 컨셉과 빨간 패키지로 선물 시장 공략, 오감자를 주력 상품으로 전환
- 러시아: 현지 베리류 잼 10여 종 출시, 차 문화와 연결된 디저트 포지셔닝
- 인도: 돼지 유래 젤라틴을 전량 식물성·소고기 유래 성분으로 교체, 채식 초코파이 출시
K-과자의 현재와 앞으로의 전망
오리온은 2024년 기준 매출 3조 3,324억 원, 영업이익 5,582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전체 매출의 65%가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초코파이만 따져도 지난해 글로벌 매출이 6,740억 원에 달했습니다. 연 매출 1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메가 브랜드(Mega Brand)를 9개나 보유하고 있는데, 메가 브랜드란 단일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제품을 의미합니다. 특정 제품 하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매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이 K-푸드 수요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코파이가 등장하면 해당 국가의 검색량이 즉각 올라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K-푸드 수출액은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과자류는 그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다만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최근 3년간 매출 성장률이 약 7% 수준에 그치고 있고 신상품 성공 사례가 드물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국내 제과 시장의 성숙도(Market Maturity)가 높아진 탓도 있습니다. 시장 성숙도란 특정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 성장 여력이 줄어든 단계를 뜻합니다. 오리온이 영화 배급사 쇼박스와 차세대 항암제 신약 기업 리가바이오를 인수하며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의 수출 통계를 보면, 국내 제과류의 해외 수출 비중은 매년 확대되는 추세입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어릴 적 용돈을 모아 사먹던 초코파이가 이제 베트남 제사상에 오르고 인도에서 국민 간식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제 경험상 어떤 음식이 문화의 경계를 넘으려면 맛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먼저 이해하고 제품을 그에 맞게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초코파이의 사례는 그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초코파이를 드셔보지 않은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오늘 하나 사서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수십 년의 전략과 문화 연구가 담긴 한 입이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