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릉도 호박엿의 원래 이름은 '후박엿'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호박엿 사려~"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그 이름이 와전된 것이라니 꽤 당황스러웠거든요.
어릴 때 호박엿의 기억, 엿장수
저는 어릴 적 동네에서 엿장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는 게 일종의 신호였습니다. "호박엿 사려~"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집 안에서 튀어나와 구경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때는 엿이 그냥 달고 쫄깃한 간식이었을 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장면 하나하나가 우리 전통 식문화의 한 단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엿은 곡물 속의 전분(starch)을 엿기름에 들어 있는 아밀라아제(amylase)라는 효소로 당화시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당화(糖化)란 전분이 분해되면서 맥아당 같은 단당류·이당류로 전환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밥이나 찹쌀을 엿기름물에 담가 오래 끓이면 점점 달콤하게 변해가는 그 원리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은 포도당과 맥아당이 풍부해 빠르게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할머니가 입이 쓸 때 엿 한 조각을 찾으셨던 이유가 단순히 달아서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학교 앞에서 돌림판을 돌려 엿을 뽑던 기억, 전통시장 한 켠에서 철컥철컥 가위 소리와 함께 팔리던 엿가락. 저에게 엿은 자주 먹는 간식은 아니었지만,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음식이었습니다.
후박엿에서 호박엿으로, 이름이 바뀐 사연
울릉도 호박엿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름의 기원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울릉도 호박엿은 원래 후박나무 껍질을 고아 달여 만든 '후박엿'이었으며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후박나무는 울릉도를 비롯한 남쪽 섬 지역에 자생하는 상록교목(常綠喬木)입니다. 여기서 상록교목이란 일 년 내내 잎이 지지 않고 줄기가 굵게 자라는 큰 나무를 의미합니다. 울릉도에서는 이 나무를 군목(郡木)으로 지정할 만큼 상징성이 있었는데, 그 껍질을 활용해 엿을 만들었다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역사적 고증에 한계가 있습니다. 울릉군청 공보과에서도 과거 어른들 사이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확실한 문헌 기록으로 뒷받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울릉도 호박엿'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되는 제품에는 후박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며, 후박나무 껍질로 만든 엿은 현재 생산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확인해 주었습니다. 결국 후박엿 이야기는 흥미로운 유래담으로는 남겠지만, 지금 우리가 먹는 호박엿은 이름 그대로 호박을 주재료로 한 음식입니다.
그렇다면 엿은 전국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데, 왜 하필 울릉도 호박엿이 대표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을까요.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마케팅의 힘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울릉도 호박엿에 들어가는 맷돌호박은 울릉도의 화산 토양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랍니다. 화산 토양은 미네랄 함량이 높고 배수성이 좋아 작물의 당도와 풍미를 높이는 데 유리합니다. 이 맷돌호박에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베타카로틴이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지용성 항산화 물질로, 면역 기능 유지와 피부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호박류는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 함량이 높아 항산화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영양과학회).
일반 엿과 비교했을 때 울릉도 호박엿이 특히 먹기 편한 이유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니 일반 엿처럼 이에 철썩 달라붙는 느낌이 훨씬 덜했습니다. 이는 맷돌호박 속 식이섬유와 전분이 엿의 점착성(粘着性)을 조절해 주기 때문입니다. 점착성이란 물질이 다른 표면에 달라붙으려는 성질을 말하는데, 호박의 섬유질이 이 성질을 낮춰줘서 치아에 덜 붙고 먹기 편한 식감이 만들어집니다.
울릉도 호박엿이 다른 엿과 차별화되는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울릉도 화산 토양에서 자란 맷돌호박의 높은 당도와 향
- 호박 식이섬유로 인한 낮은 점착성, 먹기 편한 식감
- 베타카로틴·비타민 등 영양 성분 함유
- 노르스름한 색과 고소한 뒷맛이 만드는 고유한 풍미
엿에 담긴 문화, 수능 선물이 된 사연
엿이 단순한 간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된 것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에게 엿을 챙겨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엿의 끈적한 성질에 빗대어 시험에 철썩 붙으라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오랜 공부로 지친 뇌에 당분을 즉각 공급해 준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함께였습니다. 실제로 엿의 주성분인 맥아당(maltose)은 이당류(二糖類)로서 소화 흡수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합니다. 이당류란 단당류 두 개가 결합된 당 분자로, 포도당보다는 흡수 속도가 느리지만 복합탄수화물에 비해서는 훨씬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저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지인에게 엿을 선물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냥 하하 웃으며 받았는데, 수백 년을 이어온 응원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의미와 전통이 있는 선물이었구나라고 느껴집니다. 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으로 올려졌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던 엿이 지금은 편의점과 전통시장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간식이 된 것도, 어찌 보면 현대화된 전통 음식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은 수능 시즌이 되면 울릉도 호박엿이 선물 세트로 불티나게 팔립니다. 울릉도 여행 기념품으로도,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전통을 소개하는 선물로도 꽤 좋은 선택입니다. 시장에서 철컥철컥 가위 소리를 내며 엿가락을 잘라 파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이기도 하고요.
엿이 왜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지, 이번에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더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수백 년 된 응원의 문화, 울릉도 화산 토양이 만들어낸 맛,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추억. 다음에 전통시장에 들르실 기회가 있다면, 철컥 소리를 따라 엿 한 조각 사서 드셔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냥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ROJHqr_es0s?si=sS-CPN8qFhi4DiTE
https://livewiki.com/ko/content/ulleungdo-pumpkin-hoebak-candy-ori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