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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사탕의 역사 (궁중 역사, 장인 제조, 레트로 부활)

by infotoyou 2026. 7. 9.

 

 

정조 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1795년)에 18cm 높이로 탑처럼 쌓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사탕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제삿상에서 늘 봐온 사탕인데,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그게 바로 옥춘사탕, 즉 옥춘당(玉春糖)이었습니다.



궁중 역사: 조선 왕실 잔칫상에 오르던 사탕

옥춘당(玉春糖)이라는 이름을 한자 그대로 풀면 '구슬 옥(玉)'에 '봄 춘(春)'입니다. 춥고 황량한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봄날의 꽃과 구슬을 형상화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름만 봐도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든 과자인지 느껴집니다.

조선 후기 궁중 기록에는 이미 옥춘당이라는 이름이 명확히 등장합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연 잔치에서 약 18cm 높이로 쌓아 올린 옥춘당 탑이 상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을 고임상(고배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고임상이란 조선 왕실 연회에서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며 음식을 탑처럼 높게 쌓아 올리는 상차림 방식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쌀과 조청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일반 백성은 엄두도 못 냈고, 왕실에서는 쌀가루와 엿기름, 조청을 베이스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엿기름이란 보리를 발아시켜 만든 당화 효소제로, 쉽게 말해 전통 제과에서 단맛과 점도를 내는 핵심 재료입니다. 치자와 오미자로 색을 입혀 가래떡처럼 길게 늘인 뒤 단면 방향으로 잘라내면, 우리가 아는 그 화려한 단면이 완성됩니다.

제삿상에 옥춘당을 놓은 것도 이 화려한 색감 때문이었습니다. 조상님이 오시는 길을 환하게 비춰준다고 여겼다고 하는데, 어릴 때 제사 때마다 그 사탕을 보면서 왜 여기 있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기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보존·연구하는 조선 왕실 의례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옥춘당 첫 기록: 1795년 정조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
  • 고임상(고배상) 문화로 탑처럼 쌓아 왕실 장수 기원
  • 주재료: 쌀가루, 엿기름, 조청 / 색: 치자·오미자 천연 색소
  • 제삿상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화려한 색감으로 조상의 길을 밝힌다는 믿음
요약: 옥춘당은 1795년 조선 궁중 기록에 등장하는 최소 수백 년 역사의 전통 과자로, 쌀가루·엿기름·조청을 재료로 만들어 왕실 잔칫상과 제삿상에 필수로 올렸다.

 

장인 제조: 50년 경력이 만들어내는 줄무늬의 비밀

옥춘사탕을 직접 만드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틀에 찍어내는 방식이겠거니 했는데, 전혀 달랐습니다. 설탕과 물엿을 1대 1 비율로 섞어 150도가 넘는 고온에서 끓인 뒤 냉각판에서 식히는 것부터 시작인데, 그 뒤부터가 진짜입니다.

거대한 설탕 반죽을 굳지 않도록 끊임없이 접고 치대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이를 당기기(pulling) 공정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당기기란 뜨거운 설탕 반죽을 반복적으로 늘이고 접어 내부에 공기를 집어넣음으로써 완성품의 식감을 가볍고 부드럽게 만드는 핵심 공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옥춘사탕 특유의 씹었을 때 툭 부서지는 가벼운 식감이 나옵니다.

그다음이 색 입히기인데, 이게 정말 마법 같습니다. 반죽이 식으면 가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인은 순간적인 힘과 빠른 손놀림으로 색을 입히고, 색을 입힌 겉 반죽과 흰 속 반죽을 위아래로 반복해서 늘려가며 옥춘사탕 특유의 줄무늬를 형성합니다. 50년 경력의 장인은 과거 손으로만 하던 이 고된 작업을 스스로 고안한 장비를 활용해 새벽부터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만드는 영상을 보니, 기계를 쓴다고 해도 결국 핵심 공정은 사람의 손과 판단에 달려 있었습니다.

속 반죽에는 부드러운 식감을 더하기 위해 향을 첨가하는데, 기계로 늘려주는 과정에서 옥춘사탕의 내부 조직이 완성됩니다. 이 모든 공정이 반죽 온도와의 싸움입니다. 몇 분만 지나도 반죽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장인의 숙련도가 곧 품질을 결정합니다.

요약: 옥춘사탕은 150도 이상의 고온 제조부터 당기기 공정, 색 입히기, 줄무늬 성형까지 반죽 온도와 싸우는 수작업 중심의 공정으로 완성되며, 장인의 숙련도가 품질 전체를 좌우한다.

 

레트로 부활: 왜 지금 젊은이들이 옥춘사탕에 빠지는가

옥춘사탕은 사실 오랫동안 '제삿상 사탕'이라는 이미지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봐온 사탕이지만, 그저 제사 때만 나오는 것으로만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걸 과자 가게에서 일부러 사 먹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맛 자체가 독특합니다. 겉모습은 유리처럼 단단해 보이는데 막상 입에 넣으면 은은하고 구수한 단맛이 나고, 은근한 박하 향이 살짝 감돕니다. 서양 사탕처럼 오래 녹여 먹는 게 아니라, 쌀가루와 전분, 엿기름으로 만든 구조 덕분에 조금 녹이다가 툭 깨물면 가볍게 부서집니다. 이 식감을 한 번 경험하면 꽤 인상에 남습니다.

여기에 비주얼 요소도 한몫합니다. 알록달록한 줄무늬 단면은 SNS에서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 '옛날 과자'라는 맥락이 오히려 신선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제과·제빵 기술이 현대 소비 트렌드와 맞물린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국립무형유산원은 이처럼 전통 식품 기술의 전승과 대중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출처: 국립무형유산원).

여기서 레트로 소비 트렌드란 과거의 것을 단순히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옥춘사탕이 딱 그 자리에 있습니다. 수백 년 전 왕실 잔칫상에 오르던 사탕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SNS 피드에 올라오는 것,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는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옥춘사탕은 독특한 식감과 화려한 비주얼, '전통'이라는 맥락이 레트로 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며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옥춘사탕이랑 옥춘당이랑 같은 건가요?

A. 같습니다. 옥춘당(玉春糖)이 정식 명칭이고, 옥춘사탕은 그것을 풀어 부르는 일상 표현입니다. 조선 궁중 기록에는 '옥춘당'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현재도 두 표현 모두 혼용됩니다.

 

Q. 옥춘사탕 맛이 어떤가요? 너무 달기만 하지 않나요?

A. 일반적인 설탕 사탕처럼 강하게 달지는 않습니다. 쌀가루와 엿기름, 조청을 기반으로 만들어 은은하고 구수한 단맛이 나고, 은근한 박하 향이 함께 감돕니다. 서양 사탕과 달리 오래 녹여 먹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깨물면 툭 부서지는 식감이 특징입니다.

 

Q. 옥춘사탕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A. 전통시장이나 한과 전문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판매하는 곳이 늘었고, 전통 먹거리를 다루는 일부 편집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장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있어 명절 선물 세트로 구성된 제품도 있습니다.

 

Q. 옥춘사탕 색은 어떻게 내나요? 식용 색소인가요?

A. 전통 방식에서는 치자와 오미자 같은 천연 재료로 색을 냈습니다. 현대에는 제조 방식과 업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구입 전 원재료 표기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색을 입히는 공정 자체는 반죽이 굳기 전에 순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인의 숙련도가 결정적입니다.

 

결론

사탕 하나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 저도 이번에 제대로 알고 나서 꽤 놀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삿상에서 봐온 그 알록달록한 사탕이 조선 왕실 잔칫상에서 시작해 수백 년을 이어온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150도 넘는 고온에서 시작해 반죽 온도와 싸우며 줄무늬를 만들어내는 그 공정은, 장인의 50년 경력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물입니다. 저도 올해 안에 한번 직접 사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이번에 확실히 들었습니다. 전통시장이나 온라인 한과 전문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 아직 먹어본 적 없으신 분들은 한번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H9p06QqHAxc?si=FpFlB8KkLNJCSz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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