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끝나고 나면 늘 속이 더부룩한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전이며 갈비찜이며 기름진 음식들을 한껏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돼서 불편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서 명절마다 식혜나 수정과 한 사발을 마시고 나면 신기하게도 속이 편해졌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식혜와 수정과, 소화에 좋은 효능
식혜는 엿기름가루와 멥쌀 또는 찹쌀, 설탕으로 만드는 발효 음료입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성분이 바로 아밀레이스(Amylase) 효소입니다. 아밀레이스란 탄수화물, 즉 전분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로, 침 속에도 들어 있는 성분입니다. 식혜 속 아밀레이스는 엿기름이 발아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데, 이 효소 덕분에 밥이나 떡처럼 무거운 음식을 먹은 뒤 식혜 한 잔을 마시면 소화 부담이 확실히 줄어드는 겁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정과는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생강, 계피, 황설탕으로 끓인 물에 곶감과 잣을 띄워 내는 음료인데, 여기서 핵심은 진저롤(Gingerol)과 시남알데하이드(Cinnamaldehyde)입니다. 진저롤이란 생강의 매운 성분 중 하나로, 위장 운동을 촉진하고 메스꺼움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남알데하이드란 계피 특유의 향을 내는 화합물로, 항균 작용과 함께 혈액순환을 돕는 성질이 있습니다. 수정과의 알싸하고 묵직한 단맛 뒤에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족냉증이 심한 분들이 수정과를 즐겨 마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 기능성 연구에서도 생강과 계피 성분이 위장 관련 불편감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이 두 음료가 명절 식탁에서 수십 년간 마지막 잔을 차지해온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식혜와 수정과의 특징
두 음료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식혜: 아밀레이스 효소 함유, 곡물의 부드러운 단맛, 쌀알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 탄수화물 소화 촉진
- 수정과: 진저롤·시남알데하이드 함유, 알싸하고 깊은 계피 향, 곶감과 잣으로 장식, 위장 운동 촉진 및 혈액순환 개선
- 공통점: 천연 재료 기반, 인공 첨가물 없이 만들 수 있음, 기름진 식사 후 마무리 음료로 적합
명절 음료에서 K-디저트로, 찜질방에서 카페로
저는 찜질방을 꽤 좋아합니다. 뜨거운 황토방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차가운 식혜 한 캔을 마시는 그 순간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어떤 탄산음료보다 개운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찜질방의 식혜와 수정과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무대가 훨씬 넓어졌습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전통 간식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카페에서 식혜 라떼를 팔고 바(Bar)에서는 수정과 하이볼을 내놓는 것을 이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식혜 맛 슬러시나 수정과 향을 가미한 칵테일도 SNS에서 제법 화제가 됩니다. 저는 처음에 수정과 하이볼을 봤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계피의 향과 위스키의 깊이가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직접 엿기름을 우려 만들어 주셨던 그 식혜와, 마트 캔 음료로 파는 식혜는 사실 맛이 꽤 다릅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식혜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구수함이 훨씬 깊고, 밥알의 식감도 살아 있습니다. 직접 담가본 분들이라면 제 말에 공감할 겁니다. 물론 지금은 집에서 만드는 경우가 줄어들고 시장이나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가끔 여름에 시장에 가면 떡볶이를 먹므면서 식혜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전통 식품 연구에 따르면, 식혜와 수정과는 한국 전통 발효·침출 음료의 대표 사례로, 기능성 성분과 함께 문화적 가치가 높은 식품으로 분류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K-푸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이 두 음료가 K-디저트로 자리잡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본 독일 가족이 식혜를 처음 마시고 밥알이 들어 있는 것을 신기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오히려 그 반응이 반가웠습니다. 외국인이 신기하게 보는 것들이 사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음식의 개성이니까요.
식혜와 수정과, 결국 취향의 문제입니다. 부드러운 곡물 단맛이 좋다면 식혜를, 알싸하고 묵직한 계피 향이 당긴다면 수정과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번 여름, 탄산음료 대신 시원한 식혜 한 잔을 먼저 손에 쥐어 보시길 권합니다. 속도 편하고 맛도 있는 선택입니다. 제 경험상 한번 제대로 마셔보면 자꾸 생각나는 음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