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대 한 봉지가 3,000~4,000원대면 단백질, 탄수화물, 철분을 한 번에 챙길 수 있습니다. 이걸 처음 따져봤을 때 저도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그냥 분식집 간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이렇게 균형 잡힌 음식도 드뭅니다.
순대의 기원,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
순대가 언제부터 우리 밥상에 올랐는지 찾아보면 생각보다 역사가 깊습니다.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몽골 원나라 시대의 전투식량 유입설입니다. 원나라 군사들이 돼지 창자에 피와 고기를 채워 전장에서 먹었던 방식이 고려 시대를 통해 유입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는데, 돼지 창자에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넣어 찐 음식이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경로 모두 '창자에 속재료를 넣어 익히는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가장 흔하게 접하는 찰순대(당면순대)는 사실 그리 오래된 형태가 아닙니다. 1970년대 이후 당면 공장의 대량생산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비로소 보편화된 형태입니다. 여기서 당면이란 녹두나 고구마 전분을 주원료로 만든 반투명 면류를 말하는데, 가격이 저렴하고 식감이 좋아 순대 속 재료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먹어온 그 포슬포슬한 속이 바로 이 당면 덕분이었던 셈입니다.
순대의 종류
지역별로 전해 내려오는 순대 형태는 제법 다양합니다. 저도 여러 지역 순대를 먹어보면서 이 차이를 실감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바이 순대: 돼지 대창에 찹쌀밥, 선지, 배추 우거지, 숙주를 채운 속초 아바이마을 방식. 한 입이 묵직합니다.
- 병천 순대: 돼지 소창에 양배추, 파, 선지를 넣어 당면 비율을 낮추고 채소 단맛을 살린 천안식 방식.
- 백암 순대: 돼지 소창에 다진 고기, 두부, 부추, 선지를 넣고 쪄내는 용인식 방식으로 고소한 맛이 강합니다.
- 오징어 순대: 돼지 창자 대신 오징어 몸통에 채소를 채운 동해안 방식. 처음 보면 낯설지만 먹어보면 꽤 매력적입니다.
순대의 영양 구성, 간식이 아니라 보양식입니다
순대를 단순한 분식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시각이 좀 아쉽습니다. 제가 직접 성분을 따져보니, 순대 한 인분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나름 균형 있게 들어 있습니다. 특히 속재료 중 선지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선지란 돼지 피를 굳혀 만든 것으로, 헴철(heme iron)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헴철이란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비헴철(non-heme iron)과 달리 인체 흡수율이 15~35%에 달하는 형태의 철분으로, 빈혈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
당면이 제공하는 탄수화물, 두부나 고기에서 오는 단백질, 그리고 선지의 철분까지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대는 가성비가 뛰어난 영양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겨울철 갓 쪄낸 순대의 온기까지 더해지면, 찬바람 맞으며 먹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보양식 그 자체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또한 순대의 조리 방식인 증기 가열(스팀 조리)은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식품영양정보포털에 따르면 순대 100g 기준 단백질 약 10g, 철분 약 4mg 수준이 포함되어 있어 하루 권장 철분 섭취량(성인 남성 10mg, 여성 14mg 기준)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
막 쪄낸 순대를 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소금에 살짝 찍어 순대 자체의 풍미를 즐기거나, 떡볶이 국물에 담가 매콤달콤한 맛을 입히는 방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번갈아 가며 먹는 편인데, 소금으로 먹을 때는 속재료의 고소함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친구 중에는 순대보다 함께 나오는 간이나 허파 같은 부산물을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내장류도 헴철과 단백질 함량이 상당합니다.
순대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매력입니다. 볶음 요리로 전환하면 순대볶음이 되고, 진한 국물에 넣으면 순대국밥이 됩니다. 순대국밥의 경우 사골이나 돼지 뼈로 우린 육수에 순대와 내장을 함께 넣고 끓이는 방식으로, 국물의 콜라겐과 순대의 철분이 동시에 공급되는 조합입니다. 제가 가장 자주 찾는 메뉴도 결국 순대국밥인데,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해결되는 느낌이 이 음식만의 강점입니다.
아파트 단지 5일장이나 동네 순대차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저렴하고, 든든하고, 먹는 방식도 여러 가지인 데다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음식이 순대 말고 또 있을까요.
순대를 단순 간식으로 여겨왔다면 한 번쯤 다시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소금에 찍어 먹는 기본부터 시작해 지역별 순대를 하나씩 경험해보면, 이 음식이 왜 수십 년째 사랑받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속초 아바이 순대나 천안 병천 순대처럼 지역색이 뚜렷한 것부터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깊어지는 음식이 바로 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