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25억 원이던 삼진어묵 매출이 최근 1,700억 원을 돌파했다는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도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약 4,000% 성장이라는 건 단순한 경영 성공담이 아니라, 부산어묵이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다시 써내려간 사건입니다. 부평깡통시장에서 국물 한 컵 들고 서서 어묵을 집어 먹던 기억이, 이 숫자를 알고 나서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부산어묵의 역사 — 피난민 음식에서 관광 아이템까지
대학 시절 처음 부평깡통시장에 갔을 때, 저는 솔직히 그냥 국물에 둥둥 떠 있는 꼬치를 집어 먹었을 뿐입니다. 그 시장이 1910년에 개장한 전국 최초의 공설 시장이라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부산 부평깡통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어업 인프라가 집중된 항구 도시 부산의 한복판에 자리 잡으며 어묵의 발원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어묵의 원형은 가마보코(kamaboko)입니다. 가마보코란 생선살을 갈아 틀에 넣고 쪄내거나 구운 일본식 어묵으로,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인 이주와 함께 부산 항구를 통해 처음 들어왔습니다. 흔히 '오뎅'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뎅은 어묵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국물에 끓여 먹는 요리 방식을 지칭합니다. 즉 어묵은 재료이고, 오뎅은 조리법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이 구분을 알고 나서 메뉴판을 다시 보면 꽤 많은 곳이 여전히 혼용하고 있다는 게 보입니다.
6.25 전쟁은 역설적으로 어묵 대중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몰린 피난민들에게 저렴한 잡어로 만든 어묵은 현실적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고, 삼진어묵 창립자 박재덕 씨가 영도 봉래시장에서 어묵을 팔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인 1953년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정부 차원에서 '오뎅' 대신 '어묵'이라는 우리말 사용이 권장되었고, 지금의 명칭이 그때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부평깡통시장에서 제가 먹었던 어묵이 미도어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중에 생각했는데, 1963년 바로 그 시장에서 출발한 미도어묵은 가장 전통적인 부산 시장 어묵의 손맛을 지금까지 유지하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 1910년 부산 부평깡통시장 개장 — 전국 최초 공설 시장이자 어묵의 발원지
- 강화도 조약 이후 가마보코(일본식 어묵)가 부산 항구를 통해 국내 유입
- 6.25 전쟁기 피난민 음식으로 대중화, 1953년 삼진식품 정식 창립
- 1960년대 '오뎅' 대신 '어묵'으로 공식 명칭 정착
삼진어묵의 부활 — 브랜드 비교
1980년대 대기업들이 게맛살 생산에 뛰어들면서 어묵 원재료인 생선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원양 어업을 직접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가공 산업까지 장악하자 삼진어묵 같은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수십 년간 3강 구도를 이루던 부산 어묵 업체들이 하나씩 무너지던 시기였습니다. 삼진어묵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2000년대 초 창업주 2세의 건강 악화로 3세 경영인 박용준 대표가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해 가업을 이었습니다.
당시 회사 상황은 수기 장부 관리, 과도한 대출, 비효율적인 공장 운영으로 사실상 한계에 몰려 있었습니다. 박용준 대표가 도입한 것이 어묵 베이커리 모델입니다. 어묵 베이커리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오픈 키친 형태로 입점해 어묵고로케, 단호박 어묵 등을 빵집처럼 쟁반에 담아 고르는 방식으로, 위생과 신선함을 동시에 내세운 소매 판매 모델입니다. 단순히 포장 어묵을 납품하던 B2B 구조에서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고 갓 만든 어묵을 맛볼 수 있는 B2C 구조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이 전략에 대해 처음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모델이 전국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삼진어묵의 성공은 고래사어묵, 미도어묵 등 다른 부산 어묵 브랜드들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래사어묵은 1963년 설립 이후 어묵면(魚肉面)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묵면이란 밀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연육(surimi), 즉 생선살을 갈아 탈수·냉동 처리한 가공 어육만으로 국수 형태를 뽑아낸 것으로, 글루텐 없이 면의 형태를 유지하는 가공 기술이 핵심입니다. 이런 기술 특허를 보유한 브랜드가 부산 어묵 시장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제 생각엔 이 산업이 단순한 '전통 음식 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삼진어묵은 현재 호주와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으며, 연 매출 1,70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출처: LiveWiki).
보관법과 현지 경험 — 택배로는 옮겨지지 않는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부산어묵을 택배로 주문했을 때 도착 다음 날 바로 먹지 않고 냉장실에 며칠 뒀다가 상태가 달라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연육(surimi) 함량이 높은 부산어묵은 일반 공산품 어묵보다 변질 속도가 빠릅니다. 연육이란 생선살을 채취해 물로 씻고 탈수한 뒤 냉동 보관하는 가공 어육으로, 어묵의 쫄깃한 식감과 깊은 맛을 결정하는 핵심 원료입니다. 인근 바다에서 갓 잡힌 신선한 생선으로 만든 연육 비율이 높을수록 탄력이 살아있는데, 바로 이게 서울에서 파는 어묵과 부산어묵이 다른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산어묵이 유독 맛있다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 이유가 연육 함량 차이라고 봅니다. 다만 연육 함량이 높은 만큼 보관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먹을 양만 냉장에 두고, 나머지는 받는 즉시 냉동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냉동 후 조리할 때는 완전히 해동하지 않고 끓는 물에 바로 넣는 편이 식감을 살리는 데 낫습니다. 완전 해동 후 조리하면 세포 조직이 물러져서 그 특유의 탄력이 많이 줄어듭니다.
요즘은 삼진어묵, 고래사어묵, 미도어묵 모두 공식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전국 배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부평깡통시장의 좁은 골목에서 어묵 국물 한 컵 들고 서서 먹는 그 감각은 택배 박스로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물떡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래떡을 꼬치에 꿰어 어묵 국물에 푹 불린 물떡은 시장 현지에서 먹어야 제맛인데, 쫄깃하면서도 국물을 잔뜩 머금은 식감이 따로 재현되지 않습니다. 어묵 가마보코의 기원을 생각하면 현재 부산어묵이 누리는 위상은 꽤 먼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출처: 관련 영상).
- 연육 함량이 높을수록 탄력과 맛이 뛰어나지만 변질도 빠르므로, 먹을 양 외 즉시 냉동 보관 필수
- 냉동 어묵은 완전 해동 없이 끓는 물에 바로 투입해야 식감이 유지됨
- 현지 방문 시 부평깡통시장 어묵 국물 + 물떡 조합은 반드시 경험할 것
- 온라인 구매는 삼진·고래사·미도 공식몰 또는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 모두 가능
2011년 25억 원짜리 회사가 10년 남짓 만에 1,700억 원을 넘긴 이야기는, 저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라기보다는 부산어묵이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재정의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어묵 베이커리 모델이 옳다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상업화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적어도 한때 좋지 않은 인식까지 있었던 어묵을 성심당처럼 현지에서 사 오는 여행 아이템으로 격상시킨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삼진어묵의 부활이 고래사어묵, 미도어묵 등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산에 간 지도 몇 년이 지났습니다. 슬슬 다시 가서 부평깡통시장 골목에서 어묵 국물 한 컵 들고 서 있고 싶습니다. 가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시장 안 어묵 가판대와 물떡은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집으로 가져올 어묵은 받는 즉시 냉동 처리, 잊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