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처음 먹어본 고추 부각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바삭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그 맛이 꽤 강렬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트나 온라인몰에서 부각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손이 갑니다. 그 시절에는 그냥 맛있는 할머니 간식이었는데,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건강 스낵이 됐다는 게 새삼 신기합니다.
불교 사찰에서 시작된 부각의 유래
저도 처음엔 부각이 그냥 예전부터 먹어오던 전통 과자 정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알아보니 뿌리가 꽤 깊었습니다.
부각은 불교 사찰음식(寺刹飮食)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찰음식이란 살생을 금하는 불교 계율 아래, 채소와 곡물만으로 영양을 채우던 스님들의 식문화를 말합니다. 겨울철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가을에 수확한 고추, 깻잎, 다시마 같은 재료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겨 먹던 것이 지금의 부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면, 부각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튀각입니다. 튀각이란 재료에 찹쌀풀을 입히지 않고 그대로 기름에 튀기는 방식을 말합니다. 반면 부각은 찹쌀풀을 고르게 발라 충분히 건조한 뒤 튀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차이가 부각 특유의 식감을 만들어 냅니다. 얇게 입혀진 찹쌀풀 층이 고온의 기름에서 순식간에 팽화(膨化)되는데, 팽화란 재료 내부의 수분이 급격히 기화하면서 조직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과정 덕분에 부각을 씹을 때 살아있는 쌀 알갱이 식감과 함께 극강의 바삭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부각에 활용되는 재료는 생각보다 폭이 넓습니다. 수분이 너무 많지 않고 향이 좋은 재료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음식의 매력입니다.
- 김부각: 감칠맛과 찹쌀풀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가장 대중적인 종류
- 고추부각: 매콤한 풍미가 강하고 씹는 맛이 좋음
- 다시마부각: 깊은 바다 향과 미네랄이 풍부
- 깻잎부각: 특유의 향이 살아 있어 개성 강한 맛
- 연근부각: 씹는 식감이 다채롭고 담백함
- 가죽나물부각: 마니아층이 있을 만큼 향이 독특한 전통 재료 활용
김부각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김부각입니다. 그냥 말린 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종류를 먹어봤는데, 김의 감칠맛 위에 찹쌀풀의 고소함이 덧입혀지는 조합은 정말 독보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전통 방식은 찹쌀을 직접 쑤어 풀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이스페이퍼(rice paper)를 활용하는 방법도 널리 쓰입니다. 라이스페이퍼란 타피오카 전분과 쌀가루를 얇게 성형한 시트로, 주성분이 찹쌀풀과 유사해 기름에 튀기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찹쌀풀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르며 바삭하게 완성됩니다. 접근성이 높아 가정에서도 쉽게 김부각을 재현할 수 있어, 최근 홈베이킹·홈쿠킹 트렌드와 맞물려 SNS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전문 생산 공정에서의 부각은 더욱 정교합니다. 밑간을 마친 재료에 찹쌀풀을 적정 두께로 균일하게 도포(塗布)하고, 도포란 재료 표면에 액체 물질을 고르게 바르는 공정을 말하는데, 이후 습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며 건조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특히 튀김 시간이 불과 3초 내외로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인데, 고온에서 단시간에 완성해야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살리면서도 팽화된 찹쌀 층의 식감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맞는 말인데, 부각은 갓 튀겨냈을 때보다 식혔을 때 바삭함이 더욱 살아납니다. 그래서 봉지를 뜯자마자 먹기보다 잠깐 두었다가 먹으면 식감이 훨씬 좋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전통식품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부각과 같은 전통 팽화 스낵류는 동일 중량 기준으로 일반 유탕(油湯) 스낵 대비 지방 함량이 낮고 식물성 소재 고유의 영양소 보존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유탕이란 식품을 기름에 담가 튀기는 가공 방식을 뜻하며, 부각은 짧은 시간 튀기는 방식 덕분에 재료 내 영양 손실이 적은 편입니다.
전통 간식에서 글로벌 스낵으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부각이 이렇게 빠르게 해외 시장에서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 먹던 간식이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찾아 구매하는 소비자가 생길 만큼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배경에는 몇 가지 글로벌 트렌드가 맞물려 있습니다. 우선 김(seaweed)에 대한 해외 인식 변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식재료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김을 오메가-3 지방산과 요오드, 식이섬유가 풍부한 슈퍼푸드(superfood)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슈퍼푸드란 특정 영양소가 집중적으로 함유된 식품으로, 건강 효능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된다고 알려진 식재료를 뜻합니다. 그냥 조미김도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상황에서, 여기에 찹쌀풀까지 더해진 김부각은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인은 글루텐 프리(Gluten-Free) 인증입니다. 글루텐 프리란 밀, 보리, 호밀 등에 함유된 글루텐 단백질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글루텐 불내증(셀리악병) 환자나 건강상의 이유로 글루텐을 회피하는 소비자층이 선택할 수 있는 식품 기준입니다. 부각은 식물성 재료에 찹쌀풀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기준을 충족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글루텐 프리 시장 규모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각의 수출 성장은 어쩌면 필연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
국내 농림축산식품부의 수출 통계에 따르면, 김 관련 가공식품의 해외 수출액은 최근 수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오희숙 명인이 운영하는 브랜드의 경우, 2024년 전체 매출에서 절반 이상인 120억 원이 해외 수출에서 나왔다는 수치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각의 활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봉지째 뜯어 먹는 간식을 넘어서, 부각을 베이스로 할라피뇨, 살사 소스, 치즈 등을 올려 만드는 부각 워킹 타코 레시피가 소개되며 한식과 멕시코 음식의 이색적인 조합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부각은 간식으로도, 맥주 안주로도, 요리 재료로도 두루 활용되는 식재료라는 점에서 확실히 쓸모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시중 과자류 대신 가끔 부각을 사 먹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요즘에는 선물 세트로도 잘 출시되어 있어, 명절이나 지인 선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시던 그 소박한 간식이 이렇게 세계 무대에 나서고 있다니,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 번도 부각을 제대로 먹어보지 않으셨다면, 김부각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